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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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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고등학교와 지금의 고등학교 아직도 그당시의 기억이 또렷하다고등학교 입학에서 첫 수업이었고 아마 국어 였던거 같다우리들은 내가 생각해도 심할정도로 시끄러웠다 수업시간이 반정도 지났을까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시고 분필을 집어 던지셨다그리고 말씀하셨다 "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어떻게 이 학교를 와서.." 그리고 우셨다.참고로 나이가 많으신 남자선생님 이었다 졸업을 하고 들은 얘기인데 그 선생님이 우신 이유는 00고등학교는 그 선생님이 졸업하신 모교이고나름 명문고라고 생각을 하고 계셨는데 서울 00동으로 학교가 이전을 하고 나서부터 '쓰레기' 학생들이 많아진것에 대해 매우 참담해 하셨다는 것이었다 지금 자사고 문제로 매우 시끄럽다지정 취소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어떤 분의 말씀은 서민의 자식들과 기득권들의 자식들이 같은 학교에서 양질의 교..
매일 꿈에 나왔던 친구는 매일 꿈에 나왔던 친구는 5개월정도 후부터는 꿈에 나오지 않았습니다.이제는 친구가 저를 놓아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를 찾아뵐수 없었습니다. 왠지모를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친구 어머니의 교회에 다니시기 시작했습니다.저 대신 말입니다. 약 3개월을 매일 술로 살았습니다. 다시 회사를 나갔지만 몇개월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었습니다.그리고 또 여러회사를 이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를 하늘로 보내다.. 당시에 나는 회사 동료들과 술을 먹고 있었습니다.일찍부터 시작한 술자리여서 이미 만취 상태였지요친구 00가 전화가 왔습니다. 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제가 있던 실내포차로 친구가 왔습니다.합석을 해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친구가 저를 밖으로 따로 불렀지요"재미없다 둘이 따로 나가자" 라고 했습니다. 친구를 따라가다보니 다른 친구가 차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친하지는 않았지만 저도 아는 친구였습니다.제 친구는 자기차를 타고 가자고 했습니다. 이미 만취상태였습니다.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그때 제가 운전을 못하게 했었어야 했는데.. 눈을 떴는데 병원이었습니다. 옆에는 엄마가 있었습니다.저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주변이 시끄러워 눈을 떴는데 보니 엄마와 친구 엄마가 실랑이를 하고 있었습니다.친구 엄마는 울부짖었..
청소해서 돈버는 곳이었다 구인광고지를 보고 찾아간곳은 00청소기 였다외국산 청소기를 수입해서 방문판매방식으로 먹고 사는 곳이었다 텔레마케터가 약 10명정도 있었고 영업사원들이 약 15명정도 되었다약 1달동안 내가 한것은 선배들 쫒아다니면서 청소기 기능설명하는것 같이듣고 그 집을 청소해주는 것이었다당시에는 왜 청소를 해줄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청소를 해주어야 집주인이 미안한 마음에 사줄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당시 가격이 180만원이었고 영업사원 재량으로 140만원까지 팔수 있었는데 당연히 영업사원 수당에서 공제되었다 한달평균 기본급 80만원에 수당까지 해서 약 180만원정도 받았던거 같다 모든 일이 그러했겠지만 우리들은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당연히 입사동기들 텔레마케터들과 거의 매일 퇴근후 술을 마셨다 약 1년정도를 다니..
생애 첫 이직이었다 어느날 자동차영업 선배님이 술자리에서 당신은 여기있기에 아까운 인재라고 했다 그리고 지인회사를 소개해 주셨는데 그곳은 '자판기'를 파는 곳이었다 무턱대고 지나가다가 슈퍼등이 보이면 들어갔다 그리고 자판기를 영업하는 방식이었다 약 3개월간 단 한대도 팔지 못하고 짤렸다 그렇게...반복이직이 시작되었다
첫직장 그리고 돈맛 23살에 군을 전역하고 약 3개월은 놀았다 어머니는 걱정되셨겠지만 내가 스트레스 받을까봐 였는지 별 말씀안하셨다 친동생이 자주 취업언제할꺼냐며 압박을 했다 벼룩시장이었는지 가로수였는지를 보고 대우자동차 00대리점을 찾아갔다 면접은 간단했다 면접질문은 언제출근할수 있냐였다다음날 바로 출근했다 복장은 정장이었다 영업사원이니 당연했다09시에 출근해서 약 30분 정도 상사의 잔소리 듣고 자동차 팜플렛을 잔뜩 가방에 넣고 나갔다 동기는 인쇄물을 잘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정말 부끄러웠다 1주일정도 반복하니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더는 부끄럽지 않았다왠지 재미도 있었다 1달도 되기전에 운이 좋아서 트럭1대를 팔았다소장은 이렇게 빨리 판매한 신입사원은 없었다며 모두앞에서..
돈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고2 4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월부터인가 냉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몇개월만 하려고 했는데 ...군대 가기전까지 일을 했다. 약 80만원정도 급여를 받는 일이었는데 재미가 있었던거 같다 동료들과도 친했다 군대 가기 3일전까지 일했다 당시 사장이 송별회까지 해줄정도 였으니.. 21살에 군대에 가게 되었다 미루고 싶지 않았다 의정부 306보충대로 가는길은 멀었다 어머니는 계속 우셨다 동생에게 부탁한다고 한마디 했다그리고 울지 않으려 나는 뒤돌아서 뛰어가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같이 입대한 분들도 대부분 울었다 조교들은 누가 우냐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나는 2년6개월을 복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울일도 아닌데 당시에는 왜그리 눈물이 나던지.. 우리 아들이 지금 12살이니 10년정도 지나면 군대를 가..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고2의 어느날 저녁이미 아버지는 많이 취해서 들어오셨는데 술을 더 찾으셨다 어머니는 잔소리를 하시고 그만 드시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 였다한참이 지나서 아버지는 나를 부르셨다자꾸 성적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 속상하다고 하셨다 유일한 희망인데 너무 속상하다고하셨다.나는 사춘기였다듣기 싫다고 아버지를 피해 내방으로 갔다아버지는 나를 쫒아오시다가 2층계단에서 1층계단까지 뒤로... 떨어지셨다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는데 머리에서 피가 나왔다 그날 아버지는 00병원 응급실을 갔고 다음날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그리고 약 한달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직도 가끔은 생각한다내가 공부를 열심히 잘했다면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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